밥 한 숟갈도 못 먹던 엄마가 눕지 않으려 했던 이유, 완벽함을 포기하고 만난 지금의 아이들



비움과 채움 / 마음챙김 에세이


병상을 털고 일어난 날, 저는 다짐했습니다.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눕지 않겠다." 하지만 그건 몸이 나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통증은 저를 붙잡고 있었고, 턱관절까지 병이 번져 제 손으로 밥 한 숟갈 뜨는 것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완벽한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완벽함을 스스로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눕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믿었던 날들

몸이 조금 나아진 뒤에도 하루아침에 건강이 돌아온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의지로 버텼습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나는 나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마음에 품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 앞에서 누워 있는 모습만은 보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제 작은 몸짓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챙기던 아이들을 보고, 주변에서는 "효자들"이라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제 마음은 기쁘기보다 미안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아이다운 시간을 누려야 할 나이에,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법부터 배운 아이들이 안쓰러웠습니다.




🥄 따뜻한 식사 한번 차려 줄 수 없었던 엄마

턱관절까지 병이 침범했을 때는 입을 벌려 음식을 먹는 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제 손으로 숟가락을 드는 동작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는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저는 '엄마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엄마일지라도 아이들 곁에 살아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안심했을 거라 믿습니다. 동시에 엄마가 언제 잘못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매일을 보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저릿합니다. 아이들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얼마나 큰 불안이 담겨 있었을까요.


🤍완벽함을 포기하고 나서야 보인 것들

이 무렵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좋은 엄마'란 모든 걸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아이 곁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완벽하게 챙겨주지 못해도, 몸이 불편해도, 살아서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는 이미 충분한 사랑이었습니다.

철학자 니체는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고통은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병상에서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지금 겪는 고통이 헛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완벽한 엄마가 되겠다는 강박 대신, '오늘 하루도 아이 곁에 있어 준 것'만으로 스스로를 다독이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습니다.




🌱 지금,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시간이 흘러 지금은 몸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둘째는 여느 가정의 아이들처럼 사춘기 소녀의 티를 내며 자라고 있고, 큰아이는 명문대학에 입학해 대학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매일 안심합니다.

혹시 지금 아픈 몸으로, 혹은 어떤 이유로든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계신 분이 있다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존재였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살아서, 곁에 있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투병과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입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께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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